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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가족폭력, 성폭력아 물러가라! 첫 여성 치안감, 이금형 광주지방경찰청장을 만나다

폴라폴리 2012. 5. 22. 15:38

 학교폭력, 가족폭력, 성폭력아 물러가라!

 첫 여성 치안감, 이금형 광주지방경찰청장을 만나다

 

 

 

대한민국 경찰 창설 66년 만의 첫 여성 지방경찰청장이 된 이금형 치안감.

이금형 청장은 지금 7000명 정도인 여경이 500명 남짓 있을 때인 1979년에 경찰에 순경으로 입직해 현재까지 34년 동안 경찰직을 수행했다. 과학수사 분야에서 17년의 경력을 쌓고 지금은 생활안전업무의 1인자로 불리는 이금형 청장. 강한 추진력으로 선덕여왕의 ‘미실’이라고도 불리는 이금형 청장을 만나보았다.

 

         "광주경찰이 있는데 광주지역에

                       불법이 뿌리 깊게 있을 수는 없다”

 

 

1. 과학수사 분야에서 17년을 일하셨는데, 과학수사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지금도 생생한데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사건 피해자 수사를 위해서

손목을 절단해왔어요. 현장에 신원불상의 변사체가 발견되면 손목을 절단해서 검사를 하면 신원이 나오거든요.

임신 6개월째였는데 누가 임신한 거 알까봐 마의 같은 걸로 가리고 임신했다는 표시 안 나게 작업하는데 걱정이 되는 거야. 그런데 '여자 의사들은 수술도 하잖아. 여자 의사들은 수술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하겠냐?’ 그런 마음으로 이것도 태교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우리 애가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해부 같은 걸 잘 하는 거야.

해부학 숙제를 받아왔는데 횟집하는 친척한테 칼을 얻어서 미꾸라지 긴 걸 쭉 따가지고 핀셋으로 집어내는 거야.

 태교를 완전히 엄청나게 했다는 생각으로 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참 경찰이란 직업이 이렇다는 생각을 했어요.

 

2. 가사, 육아, 업무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병행하셨나요?


처음에는 남편하고 휴일이 안 맞았어요. 남편은 월요일 날 쉬고 난 일요일 날 쉬고. 그게 굉장히 가정불화 요인이 되겠더라고. 그래서 아이들 데리고 일요일 날 사무실 나와서 나는 일하고 승진시험 있을 때는 공부도 하고 아이들은 숙제할거 하고 책 들고 와서 읽고 이런 식으로 환경에 맞춰서 살았어요.

다음에 시부모님 하고 많이 살았는데 젊은이랑 같이 사시니까 굉장히 잘 해드리고 대신에 제가 사무실에 일하고 시간이 없는 때는 시부모님이 굉장히 잘해주시고 상부상조했죠.

 

가능하면 일과 직장, 육아 가사와 자기일 양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첫째 어른들한테 잘해야 되요. 특히 시댁하고 관계를 원만하게 해야죠.

또 아이들 키우면서 많이 힘들었던 게 제가 늘 주경야독을 해니까 다른 사람들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거 보면 그렇게 부럽고 아이들에게 죄책감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애정을 양보다 질로 해준다는 생각으로 짧은 시간에 스킨십을 많이 해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했죠. 합리화시키자면 자립십을 길러준다 이런 생각도 했고요.

입, 퇴원할 때도 못가보고 퇴근해서야 가보고. 그런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냥 육아, 가사가 사무랑 쉽게 병행 가능한 게 아니라 약간의 희생 같은걸 감수해야하는 게 의무라고 보고 감수를 했죠. 하지만 그런 게 감수 못할만한 그런 것도 아니고. 지나고 보니까 아이들도 아이들 데로 잘 컸어요. 특히 시댁의 부모님하고 잘 지내서 인생도 바르게 크고.

 

 

3. 승진시험을 연달아 통과하시고 근무를 하면서 학위도 많이 따셨는데 특별한

   공부법이 존재하는지요?


다른게 아니고 승진 공부를 해야 되면 양이 많잖아요.

지금도 양을 많이 볼 때는 늘 몸이 피곤해 있어요. 그래서 그걸 다 녹음을 했어요.

다 녹음을 해서 쓰고 요약도 했죠. 녹음을 언제 듣느냐하면 다림질 할 때 설거지할 때 머리감을 때 화장할 때 등 집안 일 할 때 들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이때까지 녹음기가 3개가 고장이 났어요. 지금도 4번째 녹음기를 가지고 있죠. 평소에 사무실이 복잡할 때도 공부해야할 것을 녹음해서 들어요. 10번 이상 들으면 저절로 외외져요.

시험장에도 긴장해서 잊어버리는데 저절로 머릿속에 나의 공부 환경에 맞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24시간을 27시간으로, 28시간으로 만들어서 쓰게 되었어요.

지금도 한 번에 두세가지를 해요. 그렇게 하니까 승진시험도 어렵지 않게 떨어지지 않고 올라가게 되었어요.

 

 

4. 청장님의 주요 분야가 아동·청소년문제, 학교폭력문제, 성폭력·성매매문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입직할 때는 과학수사 분야를 맡으셨는데 어떤 계기로 생활안전업무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여성가족부가 처음 만들어졌는데 초대 여성실장을 나보고 하라고 제의가 왔어요.

그런데 나는 과학수사 분야 요원으로서 굉장히 자부심이 컸거든요. 그래서 초대 여성실장으로 안 간다고 말했어요.

민원실이나 소년계 이런데 가는 걸 나의 능력이 폄하되는 걸로 생각하고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안 갔는데 제의가 계속 들어오고 주위에서도 가서 해야 된다고 계속 말해요.

그러다가‘딸만 셋이 있는데 저런데 가서 내가 고민해야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갔어요.

그렇게 해서 갔는데 정말 뭐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조직을 완전 바닥부터 처음 만들어야 하니까요.

사무실도 나보고 직접 경찰청 꼭대기부터 밑에까지 다니면서 찾으라는 거야. 빈사무실이 없어서 어디 한군데 정했더니 그 부에서는 사무실 뺐어간다고 난리를 치지, 직원들은 서로 안 오려는 직원들 모았지….

한 달이 지나니까 성대 결절이 생겨서 목소리가 한마디도 안 나와.

 

그런데 어느 초등학생 5학년이 운동회 날 흰 옷을 입고 가다가 2인조한테 윤간을 당했어요. 피해자가 하혈을 계속하는데 찾아간 대학병원 2군데, 종합병원 2군데에서는 막 사건에 연루될까봐 서로 수술을 미뤄서 피해자가 죽을 뻔했어요.

 4시간동안 하혈하고 다녀서 얼굴이 하얗게 되고 의사 셋이 달려들어서 수술을 하고…. 나영이 배변주머니 같은 사건을 경험을 그때 한 거에요. ‘내가 여태 여성경찰이라면서 경정이나 되는데 이런 걸 몰랐다니, 진즉에 알았더라면 이쪽에서 이런 걸 뜯어 고쳤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퇴직할 때까지 이쪽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5. 최근에는 학교폭력이 이슈화 되고 있는데 학교 폭력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지금 광주경찰은 소년범 조사할 때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하고 있어요. 소년범은 아직 아이들인데 예전에는 형사들이 성인 범죄자 대하듯 육하원칙에 의해서 조사를 했어요.

대신에 전문가 참여제도는 범죄심리사 심리사 2급, 3급인 사람들이 참여해서 조사를 받아요. 아이들을 심문한다기보다는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거죠. 그리고 사랑의 교실을 운영해요. 사랑의 교실이라는 게 범죄소년, 비행소년들을 깨우쳐주게 하는 선도프로그램 같은 것이거든요. 이렇게 광주 경찰은 학교 폭력을 사전에 예방하도록 처벌을 하되 선도에 중점을 두어서 대책을 시행하고 있어요.

 

 

6. 영화 도가니가 나오면서 인화학교 사태가 논란이 되었는데 인화학교 사태를 재수사했을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성범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엄정하게 대하려는 철학이 있지.

도가니 사건 재수사 시작할 때 ‘이건 잘해야 본전이다’, ‘분명히 끝에는 비난 받을 거다’라고들 많이 했는데 ‘비난 받아야하면 받는 거지 별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시작했죠.

 

그런데 본청장님이 이번 도가니 건은 국민적으로 해소하겠다고 천명을 하셨어요.

그래서 ‘아니 도대체 일사부재리도 있고 몇 년 전 거를 뭐를 어떻게 하라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본청장님이 천명을 하니까 '기소는 못하더라도 의혹 해소 차원이라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손해배상이라도 해주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전문가랑 연계해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게 해 주었어요.

트라우마는 피해자가 자신이 안고 있는 비밀을 밖으로 쏟아내야 치유가 되요. 그런데 그 비밀들이 모두 범죄사실이잖아요.

 

여러 아이들의 진술을 상세히 조합했는데 장애인이라서 사건 일시가 1년 씩 왔다 갔다해. 그러니까 2006년도 사건 당시에는 불기소될 수밖에 없는 거에요.

이런 성범죄는 침실범죄 은밀한 범죄라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 없이는 수사가 어려운데 처음에는 아무도 말 한마디 해줘요.

 

 그래서 청장님이 직접 나서서 간담회를 했어요. 피해자대책위, ngo, 구청, 교육청 불러서 청장님이 화도 내고 했죠. 그러니까 인화학교 교사들도 많이 와서 이야기 해주고. 자료를 많이 가지고 오고, 피해자 대책위에서도 자료를 가져오고. 자료가 막 오니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제보가 또 들어오는 거에요. 신문에 나오고 그러니까.

 

이게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속된 것이 아니라 광주경찰이 치밀하게 정말 잘했고 증거확보도 잘 되었기 때문에 구속을 시킨거죠. 그냥 다시 입건해서 불구속해서 기소한 정도가 아니라 구속했어요. 지금도 재판받고 있지. 정말 뿌듯해요. 뭐든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금형 치안감은 요즘 자기 별명이 '미실'이 아니라 '덕만'이라며 웃었다. 인권, 특히 사회자 약자의 인권을 우선하는 치안정책을 펼치는 이금형 치안감을 보면 이금형 치안감의 말대로 '미실'보다는 '덕만'의 모습이 더 겹친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인권 지킴이으로써 광주경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을 이끄는 이금형 치안감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경찰대 2학년 정*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