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풍경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언어의 마술사, 이효석

폴라폴리 2012. 6. 4. 15:03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언어의 마술사, 이효석
(1907년 - 1942년)
 

 


지난 2월 23일 포털사이트 구글과 네이버에서는 이효석 작가 탄생 105주년을 맞아 각각 로고를 이효석 작가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으로 바꾸었다.

 

구글은 소설 속 허생원이 동이와 함께 메밀꽃이 피어 있는 길을 걷고 있는 장면,

네이버는 달밤에 메밀꽃이 가득 피어있는 장면으로 바꾸었으며 로고를 클릭하면 이효석에 대한 검색 결과가

나오게 하였다.


 이렇게 국제·국내 최고의 포털사이트 로고로 등장할 만큼 이효석 작가와 그의 '메밀꽃 필 무렵'은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와 사회비판적 주제를 지양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향토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어휘의 구사, 허생원과 동이의 관계에 대한 은근한 암시, 독자들이 직접 상상하게 하는 열린 결말로 인해 노벨상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받아왔다.


 소설 속 아름다운 묘사의 힘은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이 실제 그의 고향인 점에서 나온다. 실제로 이효석의 여러 소설과 산문에는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 신혼생활은 서울에서 가난하게 지냈지만 외국 소설을 즐겨 읽고 문인, 연극인, 영화인과 어울려 다니면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생활을 하였다. 이후 1932년에는 함경북도 경성으로 내려가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누렸다.

이러한 안정된 삶은 그가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해서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1940년까지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이름 있는 소설가의 역할과 화목한 가정의 가장역할을 잘 해내었고 '메밀꽃 필 무렵' 역시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삶은 오래가지 않아 1940년 아내를 잃고 이어 둘째 아들을 잃었다. 심적, 신체적으로 많이 약해진 그는 1942년 5월 3일 고열을 동반한 결핵성 뇌막염으로 쓰러져 얼마 버티지 못하고 5월 25일 사망하였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은 시를 능가하는 아름답고 향토적인 묘사로 유명하지만, 그의 이러한 문학적 경향은 그가 많은 문학적 방황을 거친 후 완성되었다. 문학활동 초기에 그는 '동반자 작가'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1920년대 한국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던 KAPF계열에 직접 동참하지는 않아도 그 작품 성향이 식민지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하는 등 비슷한 색을 띄었던 것에 착안하였다.

 

 실제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효석의 초기 작품인 '행진곡'은 동반자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33년 '구인회'에 가입하면서 그의 작품 경향은 우리가 이효석 하면 떠올리는 향토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런 작품세계와는 반대로 이효석 자신은 서구적 의식에 젖어 있었다. 빵과 버터 등 서양음식을 주식으로 먹고, 자신을 커피 애호가라고 불렀으며, 거실에 피아노와 축음기를 두고 서양 고전음악을 듣고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겼다. 또한 실향 의식을 지니고 유럽 여행을 꿈꾸는 등 유럽을 이상향으로 설정하였는데, 이런 서구적 취향은 서울에서 지내며 고교와 대학시절 동안 읽은 서양 소설들과 대학에서 그가 전공한 영어영문학, 그리고 그가 나남 일대에서 만난 백계 러시아인들과 그들의 문화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효석은 이러한 서구적 취향에 맞는 생활을 하면서 시대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아 일면에서는 그를 탐미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난의 화살은 그가 총독부에 취직한 후 더욱 강해졌는데, 유약한 심성을 지닌 그는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였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효석이 한국 현대 문학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위대한 작가임은 재고할 여지가 없다. 김동리, 황순원 같은 순수 문학작가들 역시 그에게 큰 감화를 받았으며 이효석의 문학정신을 기려 오늘날까지 후배 작가들에게 '이효석 문학상'이 수여되고 있다. 또한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평창군 봉평에서는 매년 늦여름에 메밀꽃과 소설의 내용을 담은 평창 효석문화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장면 장면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책장에서 '메밀꽃 필 무렵'을 다시 꺼내어 읽으면 오래 전에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이효석의 고향 봉평과 이효석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증진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경찰대 3학년 송원섭